이 영화는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어떻게 해서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부산의 어떤 극장에서 봤었다. 물론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다룬 영화이다. 다케다 신겐(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려나..),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일본의 전국시대를 주름잡았던 영웅들이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케다 신겐은 죽은 뒤 3년동안 카게무샤를 써서 자신의 죽음을 다른 라이벌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그 직후에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나가시노 전투에서 아들인 다케다 가쓰요리가 이끄는 군대가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에 무참하게 패배하면서 다케다 가문은 멸문하게 된다. 이 나가시노 전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아래 주소에 꽤 자세한 설명이 있다.
http://battle.culturecontent.com/content/surrounding_countries/battle_sc_06_01.asp
"카게무샤"에서 재현된 나가시노 전투는 실제 전개의 양상을 너무나 잘 그려냈다. 위의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나가시노 전투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총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영화는 그 학살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돌진하는 다케다 가문의 기병대가 보이고, 그 후에는 마방책 뒤에서 아무런 피해없이 사격하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면서 절망하는 다케다 군의 수뇌부만을 보여 준다. 다케다 가문의 군사들이 사격에 쓰러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끝난 뒤의 시체가 잔뜩 깔린 참혹한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이 그 생략된 참혹한 장면들을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생략됨으로 해서, 앞서 언급했던 나가시노 전투는 불꽃튀는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 역사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다케다 신겐 사후 그의 카게무샤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가 카게무샤 역할을 수행하면서,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이 카게무샤를 하기 전에 역시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신겐의 동생이 친절하게 설명도 해준다..^^;;) 그는 결국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風林火山의 깃발을 들고 돌진해서 자신의 생명 또한 다케다가문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다케다 신겐이 이미 3년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가 즐겨 불렀다는 노래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人間五十年
인간이 살아봤자 오십년
下天の中を比ぶれば
하늘 아래의 세상에 비하면
夢幻の如くなり
마치 덧없는 꿈과 같구나
一度生を享け
한번 생을 얻어
滅せぬ者のあるべきか.
죽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출처는 http://garden.egloos.com/10000237/post/42141)
가문의 멸문을 좀이나마 늦추려고 카게무샤까지 써야 했던 다케다 신겐이나 그 카게무샤 역할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목숨을 내던진 이 영화의 주인공도, 또 나중에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배신당해서 혼노우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오다 노부나가도 결국은 덧없는 50년간의 꿈을 꾸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이 영화는 일본 영화로는 최초로 미국 메이져 영화사인 20세기 폭스사에서 배급을 했는데, 그 Producer로 구로자와 아키라를 거의 스승님으로 모시는 두 사람 -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이름이 Ending Credit에 있다 - 이 했다. 이 영화를 만들 때, 토호(동보)에서 충분한 자금을 받지 못했고, 이 두 사람의 추천으로 20세기 폭스가 투자를 한 것이라고 한다. 후에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을 때, 조지 루카스는 직접 무대에서 에스코트를 하기까지 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