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께서 FTA협상에 대해서 "어린 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하는 것 아니냐. 한국영화가 어느 수준인지 한번 우리 스스로 판단해볼 때가 됐다." 라는 말을 하셨다는 뉴스를 봤다. 제가 아는 한 노대통령은 매우 합리적인 분이고 아주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는 분이지만, 이번에 하신 말씀은 타당치 않다. 일단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신다는 느낌이고 일반 기업하시는 분들이나 영화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 정도의 수준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영화가 어른이건 아이건 간에 미국 영화와는 수준이 같아질 수 없다. 영화는 미국에서 생겼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시초가 되었던 이벤트를 최초로 열었지만, 기본적으로 관객이 극장에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시스템은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미국의 것이다. 미국 영화는 무성 영화 시대부터 미국에 있는 세계의 모든 인종, 민족의 사람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다. 유럽이나 다른 모든 비 미국의 영화들은 자신의 언어권에 있는 관객들만을 타겟으로 할 때, 단지 미국만이 세계를 겨냥해서 영화를 만들어왔고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즉, 영화 시장은 합리적인 어른들이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거인 미국영화와 아이들간의 아주 일방적인 싸움이다. 거기에는 스크린쿼터와 같은 보호장치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은 보호무역 따위가 아니다.

둘째, 아직 우리 나라 영화는 어른이 아니다. 관객 점유율과 같은 수치 하나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 나라 영화 시장은 이제 갓 성장하고 있는 중일 뿐이다. 음반 시장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90년대 초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 나라 음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적이 있었다. 밀리언 셀러를 수많이 배출했던 우리나라 음악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십만 장을 넘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바닥에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만큼 약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한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MP3와 인터넷 공유에 조금 잠식당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궤멸당해 버렸다. 영화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우리 영화의 점유율이 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바탕은 아직 매우 취약하다. 고급 인력들이 많이 진출해있다지만, 아직 그 수는 미미하다. 대기업들이 꽤 있지만 아직 그 자본력은 몇몇 블록버스터에만 집중될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다양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미국처럼 B급 영화에서 블록버스터, 예술 영화를 아우르는 넓은 폭을 우리는 가지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미국과 같은 다양성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현재 상황은 트렌드에 너무나 편중되어 있다.

스크린 쿼터 폐지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축소의 결과를 조금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트렌드에서 벗어난 우리 영화들, 유명 배우들이 나오지 않는 우리 영화들은 현재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스크린 쿼터 축소의 결과로 우리 영화 상영의무에서 꽤 자유롭게 된 극장들에 의해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미국 영화와 트렌드에 영합한 몇몇 우리 나라 블록 버스터들이 메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몇 년 가게 되면 결국 우리 영화는 창의력이 소진된 그저 그런 상업 영화들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우리 영화계는 지금 우리 음악처럼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정말로 다분하다.
이런 최악의 결말이 날 가능성이 정말로 있다. 그리고 그 시초가 바로 스크린 쿼터 축소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사족: FTA 협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는 우리의 영화와 그리고 영화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농업을 포기해가면서 해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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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kong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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