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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문학사상사 |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던 곳은
DC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였다. 일단 제목이 매우 흥미를 끌었다. "총, 균, 쇠"라니, 저 세 가지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암튼 그래서
알라딘에서 냉큼 사서 봤다. 다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야 감상기를 끄적거려 본다.
일단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왜 인간 역사의 발전이 각 대륙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는가"이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각 대륙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서 찾는다. 즉, 유라시아가 여타 대륙들 -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비해서 여러 조건이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과 동물의 가축화 등이 다른 대륙에 비해서 유라시아 대륙이 매우 유리했고, 그래서 다른 대륙에 비해서 결국 수천년이나
빠르게 문명의 발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초의 농업 시작 지역은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이지만,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아메리카나 좁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비해서 유라시아 대륙이 확산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유럽과 한국, 일본 등의 지역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빠르게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는 그런 중앙집권적인 국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많은 문화적, 과학적 발전등이 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가 나온다. 총, 균, 쇠로 대표되는 기술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 유럽과 아시아 - 특히 유럽 - 문명은 다른 대륙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삼게 되고, 그 결과 지금의 아주 불평등한 세계의 구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지난 몇 세기 동안 백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그들이 인종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환경적인 우위가 그런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추론이다. 그리고 지금 아시아 - 한중일 3국 - 의 발전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상세한 예를 들면서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금 너무 결과론적이지 않은가 싶은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과 유럽의 최근의 역전에 대한 추론은 공감이 그렇게 가지는 않는다. 저자의 의견은 중국은 통일되어 있었고, 유럽은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분열로 인해서 새로운 영토로 진출하려는 시도들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우는 황제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좌우되었지만, 유럽의 경우는 다양한 군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 한 명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해도, 그것이 성공했을 때에 다른 곳으로 확산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긍이 가지 않는 주장은 아닌데,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그 당시 중국의 여러 가지 문화, 사상적인 요소들도 고려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도 "십자군 전쟁"이라는 하나의 큰 사건이 그 다음 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에 영향을 끼친 것도 있을 것 같고.
총이나 쇠는 사실 우리가 대충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지만, 균에 대한 것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에서 많이 배우지 못한 부분이라, 신기하고 재밌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천연두, 페스트 등의 전염병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 바로 "가축화"를 선진적으로 해낸 댓가였다는 사실이나,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죽은 원주민보다 스페인 군대가 가져온 - 의도적은 아니었겠지만 - 세균에 의해서 죽은 원주민이 더 많았다는 것도 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은 열대 풍토병으로 알고 있는 말라리아같은 것들이 사실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유럽인들에 의해서 옮겨진 세균이 발전한 거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B.C. 8000년 당시의 역사가 지금도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위에 인용한 문구가 이 책이 내리는 결론 중의 하나인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사실 조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결론이다. 지금의 아프리카 -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 를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지금도 남북 아메리카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고달픈 생을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10000년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사실은 가슴이 조금 아프다.
아메리카 인디언 들의 슬픈 운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백인들에게 쫓겨나서 지금은 그들의 보호구역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푼돈이나 벌면서 술로 지새는 인디언의 후예들이 지금도 미국에는 많다고 한다. 그것이 그 인종 자체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은 참 다행이지만, 그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10000년의 역사를 극복해내야 한다는 슬픈 현실 또한 존재한다는 것도 이 책의 결론이다. 과연 인간이 이런 불평등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지금에서라도 알았다는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해야 하나.
* 이 책은 2003년 개정 증보판을 번역한 것으로,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추가적인 논문이 하나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현재 일본인은 한국에서 이주한 - 특히 백제, 고구려에서 - 이주민들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인들도 물론 중국에서 농업과 목축을 배워온 이주민일 것이다. 이게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내가 앞서 언급한 인디언들의 슬픈 운명이 이곳과 일본에서도 수천년 전에 벌어졌던 일일 수 있다는 것. 이주민들에게 쫓겨난 슬픈 운명의 원주민들. 인간의 역사는 정말 때로는 너무 가혹하다.